• 정읍 옥정호구절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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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 최명희 기자
  • 08.10.29 10: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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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산책(雨中散策) ‘구절초가 활짝 피었습니다’

“배추들이 오랜만에 목 좀 축이것다!”
아침 산책을 나서시는 아버지가 한껏 달뜬 목소리로 비를 반긴다.


참으로 오랜만에 ‘오시는’ 비다. 반갑지만 한편으로 왜 하필 오늘이지 싶다. 정읍 옥정호에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 맞으러 가자,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치며 기다린 날이 오늘이 아니던가.


‘그래, 비 오는 날의 구절초면 어떤가. 우중산책을 나서자.’ 서운한 마음을 접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깨끗한 흰 얼굴이 신선보다 아름답다 하여 ‘선모초(仙母草)’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꽃, 길섶이나 산모롱이 어디서나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꽃, 은은한 향으로 먼저 반기는 꽃이 구절초다 .


구불구불 좁게 난 산길을 따라 오른다. 어느새 남도까지 내려온 단풍이 산길을 울긋불긋 물들인다. 비 맞아 한층 더 붉고 노랗게 익은 단풍은 회색의 구름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옥정호구절초테마공원’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서자, 구절초가 향으로 먼저 맞는다. 깊은 향 멀리멀리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작은 꽃 한 송이 때문에 발길을 멈춘 적이, 허리를 숙인 적이 얼마 만인가. 구절초 향에 붙잡힌 지금, 길을 걷다가 멈춰 서게 되는 참 행복한 순간이다.

 

구절초 향기 발길 멎고, 고운 단풍빛 눈길 멈추고
전북 정읍 옥정호변


길을 걷다 멈춰선 적이 있는가. 가스 밸브 잠그는 것을 깜빡해서, 열쇠를 두고 와서가 아니라 하늘빛이 참 고와서, 붉게 물든 단풍빛에 말문이 막혀서, 꽃향기에 숨이 멎어 멈춰선 적이 있는가. ‘아, 벌써 가을이구나’ 화들짝 놀라며 가던 걸음을 늦춘 적이 언제인가.

 

정읍 옥정호 구절초를 찾아가는 길은 ‘옹삭’하다. 대신 구불구불 길 따라 늘어선 나무들마다 다른 색으로 물들고 있는 단풍을 만나는 행운을 다른 이들보다 일찍 누릴 수 있다. 졸졸졸 냇물의 경쾌한 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빗길이라 절로 속도가 느려지고 그 덕에 붉게 물든 가을을 여유롭게 만난다. 비 맞아 더욱 깨끗해진 사위는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다.

 

한참 가을에 취해 달리다보면 오른편으로 ‘옥종호구절초테마공원’이라는 반가운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표지판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으니 ‘쌍치’라는 표지판을 본 뒤부터는 더욱 눈을 크게 뜰 것.

 

세상 어는 들꽃보다 고운 향, 구절초


[사진설명 : 2. 빗방울 맺힌 구절초 위에 벌이 사뿐 앉았다. 구절초 향에 혼미해진 벌은 미처 비를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표지판을 따라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작은 길에 내려서면 차 창문을 모두 열 것을 권한다. 바람은 시원하고 졸졸졸 냇물의 노래는 더욱 크게 들리고 눈앞의 산은 마치 병풍처럼 눈앞을 막아선다. 맑은 내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갈아입은 산의 색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바람을 타고 온 구절초 향은 비 냄새와 만나 더욱 향그럽다.

 

길 모양대로 무리지어 핀 구절초를 따라 가니 오른편 왼편으로 둥글둥글 구절초 동산이 먼저 맞는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우산을 하나 챙겨 내린다. 혹 구절초 꽃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고백컨대 이토록 향그러운 들꽃을 나는 알지 못한다. 톡 강렬하지 않지만 두고두고 코언저리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나게 할 향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와 함께 구절초 산책로를 걷는다. 비 맞아 촉촉한 황톳길은 한결 더 폭신폭신하고, 사위는 더 맑다. 산책로 이쪽저쪽으로 핀 구절초 사이를 걸으니 멀리서 보면 꼭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보이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무릎을 굽혀 비를 머금은 구절초꽃잎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벌 한 마리가 와 열심히 꿀을 빤다. 꿀 때문이 아니라 구절초 고운 향 때문에 이 빗속에서도 벌은 비를 피하지 않았으리라.

 

[사진설명 : 하얀 구절초 꽃밭에 우뚝 빨간 감을 주렁주렁 단 감나무가 서있다.]

5월 5일 단오에는 줄기가 5마디가 되고, 9월 9일에는 9마디가 된다고 해서 ‘구절초(九節草)’ 라 이름 붙인 구절초는 9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11월까지 피고지고를 거듭한다. 일순 와르르 피었다 져버리는 게 아니라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피고 지고 하면서 계속 피어나 산모롱이를 향으로 가득 채운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 김용택  ‘구절초꽃’ 중에서

 

한 폭의 산수화, 옥정호

   

[사진설명 : 구절초테마공원 주차장에서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옥정호 만경대.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전북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일대의 섬진강을 잘라내 만든 옥정호는 일제 강점기인 1926년 동진농지개량조합에 의해 농업적인 필요성을 충족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를 옥정리에서 막아 세워 반대편인 정읍군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기름지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곳은 지금 그 빼어난 풍광 덕에 영화나 사진 촬영지로 유명하다. 옥정호반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구절초테마공원 주차장에서 오른편으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 가면 드라마 ‘타짜’에서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물장구를 치던 장면을 촬영했던 만경대를 만날 수 있다.

 

붉게 물든 산과  졸졸졸 흐르는 냇물, 냇물 위 울끈불끈 솟은 바위들이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구절초 만나러 오는 길에 꼭 들러보라. 호방한 기운까지 얻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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